엔듀로 투어링 스탠다드, CRF1000L 아프리카 트윈 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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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 차체, 높은 키와 터프한 헤드라이트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야성적인 매력. 우리가 이미지나 영상을 통해 접한 다카르 랠리 바이크들의 모습이다. 모든 모터사이클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랠리 바이크는 험난한 노면 환경과 혹독한 기온 속에서 수백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거리를 달려가야만 하는 것이 존재 이유다.
낙오는 곧 죽음이다. 따라서 모든 포커스가 그러한 주파성능에 맞춰져 있다. 화려하고 매끈한 카울에 둘러싸여 통제된 트랙 안에서만 한계 속도 경쟁을 하는 트랙 레이스와는 전혀 다른 목적과 정제되지 않은 매력이 랠리 바이크에는 분명히 있다.
전설적인 명성을 이끌어 온 XRV750 아프리카 트윈은 혼다 NXR-750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742cc 엔진을 가진 듀얼 스포츠 바이크다. NXR은 1980년대 후반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네 번이나 우승했다. 부드럽고 잘 조율된 V트윈 엔진으로 구동되는 아프리카 트윈은 아이코닉한 트윈 헤드라이트, 높은 윈드스크린과 알루미늄 그랩 레일, 긴 시트와 엔진 하부의 배쉬플레이트가 장착돼 있다.
그 후로 해를 거듭하며 새로운 프레임, 연료탱크, 카울링, 시트 및 클러치 등 다양한 부분에 변형을 시도하며 성장해오며 엔듀로 투어링 바이크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다가 2003년 생산을 중단하고 긴 공백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2015년, 후속인 CRF1000L 아프리카 트윈이 발매됐다. 998cc 병렬 2기통 엔진을 가진 듀얼 스포츠 바이크로, NXR-750, 그리고 XRV750 및 XRV650의 현대적인 해석으로 개발됐다. 놀라운 것은 차체에 혼다 모터사이클의 고유 기술인 자동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달아 독특한 오프로드 주파성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에게 신기술과의 조합으로 보답한 것이다.
2014년 밀라노 전시회에서 공개됐던 신형 아프리카 트윈의 프로토 타입은 위장막에 덮여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True Adventure&(39;라는 콘셉트의 파리-다카르 랠리 우승 스토리와 아프리카 트윈의 역사 스토리를 담은 비디오 시리즈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양산형 모델이 일반에 공개됐을 때 가장 큰 화제는 빅 엔듀로 바이크와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의 듣도보도 못한 조합이었다. 충격적이고 신선한 조합이었다. 평은 여러 가지로 엇갈렸으나 시도만큼은 역사에 남을만했다.
우리는 이미 DCT 버전을 다양한 코스에서 시승해봤다. 한마디로 신세계였다는 평을 했다. 가볍게 움직이는 1,000cc 클래스의 빅 엔듀로 바이크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거기에 클러치없이 버튼으로 조작되는 DCT의 궁합이 묘했다. 라이딩 코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했으며 전에 없던 스포츠 장르가 탄생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본래 모터사이클의 취향을 간직한 MT(매뉴얼 트랜스미션) 버전에 대한 궁금점도 불거졌다.
이번에 우리가 시승한 MT 버전은 DCT 버전의 차체 중량 245kg에 비해 10kg 가벼운 무게다. DCT 버전 기준으로 G스위치나 파킹 브레이크가 생략된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동일한 제원을 가지고 있었다. 즉 같은 바이크다. 시승차량 색상은 레이서 데칼이었던 DCT 버전의 기존모습보다 훨씬 차분한, 은은하게 빛나는 레드 컬러였다. 가격은 DCT 버전 대비 150만원이 차이 난다. 분위기는 비슷한데 컬러 덕분에 좀 더 온화해 보였다. 전륜 휠은 21인치 90/90 사이즈로 튜브타입이고, 뒤는 150/70 사이즈의 18인치 휠을 기본으로 한다. 키가 크고 늘씬한 이미지는 그대로다.
시트에 올라보니 2단계로 조절되는 중 낮은 쪽으로 설정돼 있었다. 이렇게 하면 표준 870mm에서 20mm 내려가 850mm가 된다. 시승기자 키는 174cm다. 양발 끝이 바닥에 닿는 수준이지만 의외로 실제 체감되는 무게감이 적고, 시트 앞 폭이 좁아서 부담이 적었다. 도로에서는 교통 체계에 따라 정차할 일이 많으므로 이러한 부분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발가락으로 기어 레버를 중립에 넣고 시동을 켜는 느낌이 이렇게 색다를 줄은 몰랐다. DCT가 독특함으로 시작했다면 MT는 익숙함으로 시작한다. 어두운 배경에 상하 배치된 디지털 계기는 상부에 엔진회전수를 보여주는 타코미터와 속도계 숫자, 하부에는 기어 포지션과 트립미터 등 자잘한 정보를 표시한다. 어두운 배경이 고급스럽고 멋지긴 한데 의외로 밝은 태양광아래에서는 한눈에 정보를 읽기 어려웠다. 시간이 갈수록 눈에 익으니 점점 나아지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흰 배경의 계기반이 이미 눈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중립상태에서 스로틀을 슬쩍 비틀어 공회전을 해보니 엔진의 감각이 느껴진다. 1,000cc 클래스의 2기통 엔진이지만 무척 경쾌하고 가볍게 돈다는 느낌이다. 1,500rpm 정도에서 대기하는 엔진은 스로틀 개도에 따라 정확하게 반응했다. rpm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속도가 빠르고 반응이 민첩하다.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해보니 약 2,000rpm부터 토크가 올라온다. 클러치만 가지고 부드럽게 출발할만한 느낌은 아니었고 2기통답게 좀 거칠고 툴툴거린다.
2단을 넣고 쭉 가속해보면 4,000rpm을 기점으로 토크가 확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계속 기어를 바꾸면 가속해보면 강한 토크가 주눅들지않고 최고회전인 8,000rpm까지 지속된다. 어떤 기어에서든지 4,000~6,000rpm 사이에서 파워가 가장 좋고 직결감도 좋아서, 충분히 1리터 엔진다운 호쾌함을 만끽할 수 있다.
엔진 한계회전까지 가속해보면 2단에서 이미 100km/h를 넘고 3단만 되어도 고속 주행할 수 있을만큼의 속력을 낼 수 있다. 스펙 테이블을 보면 최고출력 88마력이라는 수치가 다소 아쉽지만 실질적인 성능은 구동 손실이 무척 적어서 그런지 몰라도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실제 수치보다 쾌적한 성능을 내는 것은 혼다 엔진의 특징이기도 하다.
짱짱한 엔진 반응보다 더 놀란 것은 체급에 어울리지 않을만큼 민첩한 핸들링 성격이다. 90mm의 좁은 프론트 타이어 폭도 한 몫하겠지만, 좌우로 기울어지는 속도가 아주 빠른데다가 작은 핸들조작으로 쉽게 제어가 된다. 이런 점이 직결감이 좋은 엔진 반응과도 잘 어울려서 마치 머신과 한 몸이 된듯한 느낌을 준다. 오르기 전에는 키도 크고 무게도 상당해보였는데, 막상 달리니 너무나 익숙하고 타기 편하며, 핸들링도 재미있다. 오히려 DCT보다도 첫 인상이 좋았다.
엔듀로 투어러를 지향하는 모델인만큼 평탄한 오프로드를 속도내어 달려봤다. 겨울이 되어서 제법 노면이 미끄럽고 진흙탕은 얼어붙은 곳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트윈은 염려하지 않고 달려나갔다. 직경 45mm의 도립 포크는 230mm의 긴 작동길이를 가지고 있는 본격적인 오프로드 대응 서스펜션이다. 리어 또한 작동길이는 220mm나 된다. 사용자 기호에 따라 압축력, 신장력, 초기하중 모두 조절이 된다.
지상고가 250mm로 높아서 어지간한 험로도 무리없이 주파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항들은 DCT와 공통이지만, 매뉴얼 미션이어서 더 좋았던 점은 명확했다. 클러치를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DCT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대신, 평온하게 달릴 수 없는 노면을 마주했을 때 클러치를 미세하게 조절하면서 토크를 아주 짧은 찰나에 정확하게 꺼내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벤트라 할 수 있는 험로에 진입했을 때 그저 DCT만 믿고 스로틀만 감아서 토크를 유지하는 것과는 다르게, 클러치를 붙이고 떼면서 운전자가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장점. 이것은 아직까지 듀얼클러치가 인간이 하는 미세한 컨트롤을 따라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게다가 무게는 10kg이나 가벼우니 거기에 대한 운동성의 증가도 분명히 부가효과가 된다.
왼쪽 핸들바 스위치로 선택하는 HSTC(Honda Selectable Torque Control)은 3단계로 강도 조절할 수 있다. ECU가 ABS 센서를 이용해서 리어휠의 미끄러지는 정도를 계산해 연료분사량을 컨트롤하는 방식이다. 이로써 리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과정을 한층 부드럽게 조절해 준다. 확 미끄러지고 그립을 확 찾아서 라이더를 불안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분사량을 조절해서 과정자체를 마치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이정도 사이즈의 빅 엔듀로 투어러는 흙 위에서 저속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유턴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마련인데, 아프리카 트윈은 저중심 설계에 차폭이 갸름해서 생각외로 부담이 적었다. 이 또한 DCT 버전보다도 한층 가볍게 운용하기 편하다고 느꼈다. 줄어든 10kg의 차이가 단순 수치의 문제는 아님을 느꼈다. 아직은 매뉴얼 기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더욱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브레이크는 프론트 310mm 웨이브타입 플로팅 디스크와 래디얼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 로드바이크와 같은 4피스톤으로 제동력이 상당하다. 서스펜션 작동폭이 길어서 부드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제동력자체는 로드스포츠 바이크와 비슷한 감각으로 첨예하게 작동하며 컨트롤 특성이 즉각적이어서 속력을 조절할 때도 좋았다. 리어는 256mm 디스크를 장착했는데 오프로드 주행 시 리어 휠만 ABS를 끌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핸들은 중앙이 두껍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테이퍼트 타입으로 강성이 높고 진동이 적은 장점이 있다. 탑브릿지 핸들홀더는 고무 마운트를 적용해서 장거리 주행 시 진동을 크게 줄이고 있다. 운전자는 피로감 대신 활기찬 엔진의 움직임만 즐기면 된다.
스위치류는 단순한 구성으로 작동이 난해하지 않고 대부분 기능이 분리되어 있어 달리면서도 손으로 더듬어 작동하기가 좋았다. 비상등 스위치는 핸들 오른쪽에, 토크 컨트롤 스위치는 핸들 왼쪽에 있다. 토크 컨트롤은 3단계 중 어느 수준으로 해놓아도 시동을 껐다 켜면 다시 3단계(풀 작동)로 복구되는 기능이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혼다의 안전 철학과도 관련있다고 했다.
차체는 처음에 말했듯 높이가 높고 폭은 가느다란 이미지다. 윈드스크린의 높이는 아주 적당하다. 추운 맞바람을 잘 흘려보내줬고 그 덕에 영하 온도에서도 직접 바람을 맞는 일은 없었다. 손을 보호하는 핸드가드도 순정이고, 하체 쪽 다리 아래로는 주행풍이 약간 들이쳤지만 목이 긴 라이딩부츠를 신으니 괜찮았다.
시트는 시트 아래의 조절 장치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850mm와 870mm중 골라 설정할 수 있다. 수치는 높은 편이지만 실제로 타보면 850mm 정도라면 누구라도 오를만한 체감 높이가 인상적이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독특하고도 날카로운 엔진음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트윈의 V트윈 엔진을 탑재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 적도 있지만, 만약 V트윈이었다면 이런 배기음은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매력적이다. 직접 들어보면 알겠지만 배기음이 아닌 엔진음이 이렇게 와일드한 바이크는 몇 없다. 특히 혼다 바이크라면 더 희소하다.
시승차는 패니어 케이스 및 톱 박스 모두 장착된 상태였다. 고백하자면 시승차를 수령받아 본지 사무실까지 달리는 동안 좌우에 박스가 달려있다는 사실을 모른채로 경쾌한 핸들링을 즐기며 달려왔다는 것이다. 분명히 수 kg의 무게가 늘었고 무게중심이 상하좌우로 흐트러졌을 법도 한데, 기본적인 밸런스 설계가 잘 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어드벤처 투어링바이크에는 소위 3박스라 불리는 투어링 패키지를 기본으로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원래 설계 목적의 운동성에 방해가 된다면 정말 아쉬운 일일 것이다. 다양한 어드벤처 바이크를 시승하면서 아프리카 트윈이야말로 밸런스에 영향이 가장 적은 순정 투어링 패키지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사제품이 내구성면에서 뛰어날지 모르나 밸런스 면에서 이 정도까지 운동성을 보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신박한 DCT 버전을 먼저 시승했기 때문에 MT 버전에 대한 기대치는 솔직히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타보니 오히려 이쪽이 원래 아프리카 트윈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엔듀로 투어러’로서 완벽했다. 더 오랜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정도의 믿음도 줬다. ‘1,000cc에 근접하는 배기량을 가졌음에도 단 88마력만 내는 엔진은 대체 뭘까?’ 싶었던 처음의 생각도 MT버전으로 타보니 확실히 ‘숫자는 그냥 숫자일 뿐’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번 밀라노 국제 전시회에 등장한 ‘어드벤처 스포츠’ 버전은 여기에 엔듀로 성능을 더 높이고 연료탱크 용량도 늘렸다고 한다. 확실히 데칼도 왕년의 날렸던 시절을 그대로 복원한 듯 멋지고 존재만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됐다. 이미 스탠다드 버전으로도 충분하다. 기본 사양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도 이번 생애 다 누릴 수 있을지 모를만큼 광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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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성진 사진 임성진, 장낙규 jin)ridemag.co.kr
제공
라이드매거진(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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