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힘 빼고, 언제든지’ 크루저 품은 스크램블러 SCR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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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다.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는 논리다. 모터사이클도 그럴까?
자갈길이든 흙길이든 가리지 않고 달린다는 스크램블러. SCR950은 그 의미를 이름에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이번이 두 번째 시승이다. 여러 얼굴을 가진 기종은 시간을 할애해서 여러 번 타본다. 다방면에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첫 대면이었으므로 이름에서 따온 ‘스크램블러’로서 성능이 어떤지 확인해봤다. 이번에는 현실적으로 우리가 주로 달리는 아스팔트 도로에서의 성능을 확인해봤다.
엔진은 4스트로크 공랭식 V트윈이다. 배기량은 942cc다. SOHC 방식으로 낮은 회전에서의 토크가 뚜렷한 특징이 있다. 주로 크루저에 즐겨쓰는 엔진 형식이다.
SCR950의 기본 설계는 도로용 크루저 ‘볼트’다. 여러 면에서 볼트와 닮았다. 캐스팅 휠 대신 완충 효과가 좋은 와이어 스포크 휠을 사용했다. 크기는 앞 19인치, 뒤 17인치다.
클래식 스크램블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포크 부츠가 주행하면서 튄 흙먼지를 대신 뒤집어썼다. 대부분 멋인 줄 알지만 원래는 기능적인 요소가 크다.
키 홀은 계기반 아래가 아니라 프레임 오른쪽에 있다. 볼트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키를 오른손에 쥐고 허리를 숙여 구멍에 꽂아 돌린다. 익숙한 방식은 아니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시트에 앉아보면 앞이 확 트여있다. 핸들바가 가늘고 넓게 펼쳐져 있다. 계기반은 디지털 방식이지만 겉 모양새는 아날로그다. 언뜻 보면 동그라미 하나가 전부다.
발판은 일반적인 도로용 바이크처럼 뱅킹센서가 달려있다. 오른쪽 발판은 안쪽으로 지나가는 배기관 때문에 바깥으로 크게 벌어져 있다. 발을 올리면 무릎을 쩍 벌리게 된다.
연료 탱크는 차체 크기에 비하면 아담하다. 색상이 풋풋해서 더욱 예뻐 보인다. 옆에서 보면 시트 높이와도 큰 차이가 없다. 시트 라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운전자세를 잡아보면 연료탱크가 몸에 닿지 않아서 자유롭게 느껴진다. 휘발유는 13리터가 들어간다.
볼트처럼 단순함을 콘셉트로 구성됐다. LED 제동등과 일반 전구가 들어간 방향지시등이다. 후미등은 크기가 작아도 LED 램프가 밝아서 야간에도 잘 보인다.
시동을 켜면 부르르 떠는 대형 V형 2기통 엔진만의 독특한 진동이 시작된다. 배기량 대비 음량은 작은 편이다. 차체는 1단부터 부드럽고 묵직하게 움직인다. 차분하고 무겁게 도는 엔진이다.
좌우 스위치들은 기능상 필요한 정도의 질감이다. 고급스럽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딱 필요한 만큼만 한 느낌이다.
계기반 조작은 우측 핸들 스위치로 한다. 비상등 스위치도 있다. 스로틀 그립은 다소 단단한 느낌이지만 돌기가 크게 나와 있어 미끄럽지는 않다.
계기반은 외부적으로 원형이지만 네모난 디지털 액정에 상태가 나타난다. 속도계가 가장 크고 엔진 회전수는 안 보인다. 모드 버튼을 눌러보면 구간거리계, 시계 등 기본정보만 알려준다. 그 아래로 중립등, 상향등, 경고등 램프가 있다.
계기부 구성이 심플하다. 뒤로 보이는 헤드라이트 덮개는 유광 검정색이다. 보통 크루저의 크롬 도색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시트 높이는 830mm로 낮지 않다. 하지만 시트 너비가 갸름하고 탱크도 날씬해서 심리적으로는 별로 부담이 없다. 무게는 252kg으로 대형 투어러와 비슷할 정도로 헤비급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느다란 차체의 효과로 중압감이 덜 한 것이 특징이다.
뒷바퀴는 체인이 아니라 케블라 벨트의 힘으로 돌아간다. 탄성이 좋고 변속충격이 작으며 유지관리가 편하다. 편안한 승차감을 중시하는 크루저에 주로 적용하는 방식이다. 오프로드도 달리는 스크램블러에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와이어 스포크 휠은 오프로드에서 완충작용을 더하지만, 온로드를 달릴 때는 클래식한 분위기를 꾸미는 역할이 크다.
기어는 5단까지다. 시속 60km~80km를 재미있게 달릴 수 있다. 엔진회전수에 관계없이 힘이 고르게 나오기 때문에 몇 단에서라도 스로틀만 당기면 부드럽게 가속할 수 있다.
도심에서 주행해도 참 재미있다. 차폭이 좁고 핸들링이 가벼워 저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이기가 좋다. 출퇴근 용도로 써도 좋고 데이트할 때, 한강 변에 바람 쐬러 갈 때 타도 좋다. 가까운 거리를 갈 때 의외로 가볍게 즐기기에도 좋다는 뜻이다.
배기량이나 무게의 수치에 놀랄 수도 있지만, 도심에서의 기동성은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빅 트윈 엔진인데도 배기음이 크지 않아 행인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는다.
오른쪽에 튀어나온 에어클리너 박스는 독특한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운전자와 밀착이 안 돼 바이크와 일체감을 느끼기 어렵다. 약간 헐렁하게 달리는 게 어울리기는 한다.
구조상 오른쪽으로 나온 배기관은 방열 대비가 되어 있다. 생각 외로 열기가 전달되지 않았다. 저속 주행이 계속되자 오히려 다리가 가깝게 닿는 엔진 왼쪽 면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연료 탱크와 시트 단차가 크지 않다. 덕분에 운전 환경에 따라 앞이나 뒤로 착석위치를 쉽게 바꿀 수 있다. 비 포장로에서 적극적인 핸들링을 할 때에는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아 팔꿈치를 여유있게 구부릴 수 있었고, 도로를 크루징하듯 정속 주행할 때는 시트 가운데 앉아 슬쩍 허리를 수그린 채로 맞바람에 대응할 수 있다.
SCR950이 원조인 볼트에 비해 가장 큰 차이점은 라이딩 포지션의 자유다. 평평하며 좁고 긴 시트가 스크램블러만의 장점을 잘 살려주고 있다. 시트 탄성이 강해 착석감은 약간 단단한 편이다.
진지함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심을 달렸다. 볼트가 가졌던 무거운 분위기를 덜어낸 레드 컬러 연료탱크가 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2단, 3단으로 슬슬 달리면서 차량 흐름을 따라가자 평소에 달리던 길도 투어링 로드로 변한다.
타이어는 터프한 트레드 패턴이 눈에 띄지만 사실은 온로드에서 잘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저속, 고속 할 것 없이 안정성이 뛰어나고 배수성도 좋다. 이런 타이어는 특별히 높은 접지력을 갖지 않지만, 대신 내구성이 좋고 까다롭게 노면을 가리지 않는 특성이 강점이다.
교차로에서는 넓은 핸들바를 살짝 움직여도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앞 타이어 폭이 좁고 저속에서도 컨트롤이 편하도록 설계된 섀시 덕분이다. 핸들링 면에서는 특히 낮은 속도에서 크루저인 볼트와 다른 부분이 많다. 다시 말하자면 훨씬 타기 쉽게 바꿔놨다.
벨트 드라이브는 오히려 온로드를 느긋하게 달릴 때 어울린다. 체인과 달리 변속충격이 크지 않고 별도 윤활을 할 필요도 없다. 관리 면에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 가끔 교체 시기만 확인해주면 된다.
앞에서 보면 보통 크루저 혹은 네이키드 바이크같다. 원형 전조등에 원형 방향 지시등, 원형 계기반에 백미러, 제동등까지 전부 다 동그라미다.
핸들링이 간편하다고 속도를 내고 깊게 눕혀 들어가면 스텝에 달린 뱅킹 센서가 땅에 긁힌다. 기울이는 한계는 높지 않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타는 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코너링 머신이 아니기 때문에 수긍할만한 수준이다.
기본은 확실히 크루저의 향기가 솔솔 난다. 하지만 라이딩 포지션이나 각 부위의 수치를 면밀하게 다듬어 성격을 확 바꿔놓았다. ‘타기 쉽고, 취급하기 쉽게’ 타라는 개발자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겉으로 봐도 분위기가 워낙 밝아서 도저히 250kg 대의 리터급 바이크라는 생각이 안 든다.
스크램블러의 매력은 오프로드를 잘 달릴 수 있다는 게 아니다. 비포장로 정도는 스쿠터로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스크램블러라서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바이크로도 다 갈 수 있다.
스크램블러의 매력은 어디서나 타기 쉽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타보고 싶게 만든다. 다른 장르에서 찾기 힘든 특징이다. 쓸데없이 진지한 분위기 대신 어디서나 잘 어울리고 어디서나 잘 달릴 것 같은 부담없는 분위기. 그게 가장 큰 매력이다.
‘답답한데, 잠깐 나갔다 올까?’ 스크램블러는 아무 때라도 바람쐬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SCR950은 스크램블러 중에서는 헤비급이다. 하지만 버거운 마음이 안 든다. 크루저를 품은 스크램블러의 털털한 매력은 캐도 캐도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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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성진 사진 임성진, 장낙규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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