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 로드스터, 순수하게 걸러낸 ‘달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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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떠올리는 할리데이비슨의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 양팔과 다리를 크게 벌리고 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는 ‘고동감’을 살린 바이크다. 많은 이들이 이 ‘맛’을 느끼기 위해 할리데이비슨을 탄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도 좀 더 ‘타이트한 맛’을 느끼고 싶은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스포스터 패밀리를 선호한다. 달리는 즐거움에 충실하고 편의장치를 많이 덜어 내 비교적 운동성이 가볍고 민첩하기 때문이다.
그런 스포스터 패밀리의 화끈한 성능을 더욱 증폭시켜 줄 모델이 태어났다. 할리데이비슨 로드스터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 모델은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무겁고 당당한 덩치의 중압감이 없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스포티하다. 요즘 유행하는 클래식 느낌의 네이키드 바이크와도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할리는 할리다. 긴 차체와 낮게 깔린 실루엣, 그리고 꽉 찬 엔진룸의 V형 2기통 엔진이 그렇다. 앞/뒤에서 보면 갸름하고 날렵하게 생겼지만, 옆에서 보면 당당한 자세가 무척 아름답다.
전반적인 구성은 최신 로드스터 바이크들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스포츠 지향적이다. 일단 앞 서스펜션이 눈에 띈다. 여기에 장착된 43mm 도립식 포크는 위에서 아래로 찍어누르는 형태로 강성이 높고 현가 하 질량을 줄여 표준적인 정립식 포크에 비해 운동성이 좋은 것이 장점이다. 반면 전체 무게는 무겁고 가격이 비싸다. 본격적인 스포츠 바이크라면 필수 구성요소 중 하나다. 여기서만 해도 이 모델이 스포츠 라이딩을 대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브레이크 성능도 이에 따라준다. 더블디스크와 2피스톤 캘리퍼 한 쌍을 장착했다. 핸들은 파이프 형태이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운전자 쪽으로 슬쩍 휘었다. 즉, 바이크에 밀착하기 좋은 엎드린 자세가 연출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연료탱크가 작아 핸들이 무척 가까운 데다, 핸들이 무턱대고 낮은 곳에 있지는 않기에 그다지 버겁지 않다. 일상적인 라이딩에서 힘들지 않게 자세를 유지할 만한 위치다.
시트는 무척 폭이 갸름하고 높이도 낮다. 기본적인 섀시가 크루저의 그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낮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로드스터는 785mm로 적당하다. 시트에 앉아보면 푹신하다. 장시간 엉덩이에 압박될만한 부위에는 적절히 쿠션이 들어가 있다. 디자인도 클래식하고 예쁘다. 뒷자리는 카페레이서 형태로 짤막하게 다듬었기 때문에 그다지 안락하지 않다. 대신 보기에는 날렵해 보이고 멋지다.
백미러도 낮게 달려있긴 하지만 뒤를 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다. 방향지시등 또한 생긴 것은 심플하지만 뒤의 경우 브레이크 램프 기능도 겸하는 실용품이다. 여러 가지로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가운데 엔진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게 디자인했다. 전체적으로 작지만 단단한 인상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달려봤다. 일단 시트에 앉자 키 175cm의 기자의 신체 사이즈가 무척 잘 맞았다. 시트 높이부터 핸들 바 거리, 높이까지 무엇 한 가지 부자연스러운 곳이 없다. 혹시 누군가 할리데이비슨 바이크의 부담스러운 이미지가 머릿속에 있다면 로드스터부터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핸들 주변의 스위치류는 아주 세련된 인상이다. 눌렀을 때 조작감도 좋고 하나하나 마감이 우수하다. 정확한 위치에 오차 없이 매립되어 있는 플라스틱류 역시 조립 품질이 인상적이다. 헐렁한 이미지가 전혀 없다.
로드스터는 키 팝 시스템으로 키를 사용할 필요 없이 소지만 하고 있으면 간단하게 스타트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 수 있다. 단, 핸들락을 걸 때는 키가 필요하다. 핸들락을 걸면 점화가 차단되므로 무선 키 오작동에 관한 걱정도 사라진다. 부르르 떠는 V2 엔진의 진동은 역시 할리답다. 기통 당 600cc, 총 1,200cc 에 달하는 두 개의 피스톤이 쿵쾅거리며 주변을 울린다.
엔진음은 박력이 넘친다. 두 갈래로 나뉜 머플러에서 나는 배기음은 적당히 존재감이 있어 좋다. 순정품답게 아주 시끄럽지는 않다. 기어 중립 상태에서 슬쩍 스로틀을 돌려보면 ‘두두둥~’하면서 고동감이 기분 좋게 심장을 울린다. 스탠드를 접어 차체를 일으켜 세우면 작고 갸름하지만 무게는 적지 않게 나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래 봬도 건조중량 250kg이다. 할리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풀 패키지 투어링 바이크 급이다.
기어는 총 5단으로 구성된다. 1단부터 토크가 충분하다. 널찍한 스로틀 그립을 감아쥐면 순식간에 속력이 오른다. 1단에서 약 80km/h를 달릴 수 있고 2단에서 120km/h, 3단에서 160km/h를 마크한다. 작정하고 스로틀을 감기 좋은 시원스런 기어비다.
엔진은 아이들링인 1,000rpm부터 시작해서 숨을 고르면서 온몸에 진동을 주다가, 3,000rpm부터는 아주 매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진동이 확 줄면서 본격적으로 가속할 수 있다. 그대로 쭉쭉 가속하다보면 어느새 시속 160km까지도 순식간. 달리기 본능을 이만큼 일깨우는 할리는 오랜만이다.
가속하는 과정은 무척 드라마틱하면서도 재미있다. 저회전에서는 영락없는 할리의 그것처럼 고동감을 즐기기에 좋은데, 조금만 더 감아주면 매끄럽게 치고나가는 맛이 아주 즐겁다. 마음먹으면 성능을 위주로 달리는 로드스터와도 나란히 달리며 커브가 많은 고갯길을 농락하기 좋다.
뒷산의 구불구불 휘어있는 와인딩 코스를 향해 달려보니 그것이 상상뿐인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직선 코스에서 힘차게 가속한 후 블라인드 코너를 발견하고 부드럽게 레버를 움켜쥐며 풀 브레이킹, 그리고 차체를 순식간에 기울이면 스텝의 뱅킹센서가 노면에 스치면서 바닥에 한결 가까워진 머플러가 땅을 뒤흔드는 2기통 배기음을 토해낸다.
그대로 리듬을 즐기면서 스로틀을 과감히 열면 압도적인 토크와 차체 무게가 합산이 돼 뒤 타이어가 진득하게 눌리면서 호쾌하게 다시 가속. 이런 리듬을 살리면서 좌/우 코너링을 즐기면 정말 즐겁다. 로드스터다운 운동성이 곳곳에 배어있다.
차체는 기본적으로 낮게 설정됐지만 무게중심은 엔진 헤드가 하늘을 향해 있기 때문에 일단 균형을 무너뜨리면 순식간에 뱅킹한계까지 눕힐 수 있다. 그렇지만 접지감이 무척 좋기 때문에 겁먹을 일이 없이 그대로 가속해주면 그만이다. 4기통과 같이 ‘빠르게 달린다’는 목적의식이 아니라 ‘즐기며 달린다’는 감각이 무척 강하다.
제동력이 충분하기에 브레이킹 작업도 무척 재미있다. 차체 무게가 워낙 무거워서 이정도 구성으로 괜찮을까 의심한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척 만족스러울 만큼 브레이크는 완벽하다. 핸들 포지션과 스텝위치가 다소 가깝지 않나 했던 의구심도 막상 템포를 올려 달리다 보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핸들링하기에 좋았다.
서스펜션은 다소 단단한 인상으로, 접지감을 잘 발휘해주는 장점이 있다. 거의 체중이 시트에 실리기 때문에 요철구간에서는 속력을 줄이게 됐지만, 시트가 보기와 다르게 푹신해서 충격을 흡수해 준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뒤 서스펜션 정도는 주행 스타일에 맞게 튜닝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와인딩로드를 빠져나와 긴 직선주로를 달리면 다시 할리데이비슨 크루저가 된다. 톱기어에 엔진을 물리고 3,000rpm 전후로 기분 좋게 크루징하면, 행복하다는 감정이 절로 든다. 앞/뒤 시트 너비가 있어 체형에 따라 라이딩 포지션에 대응하기 좋은 것도 장점이다. 와인딩로드에서는 공격적으로, 크루징 시에는 편하게 탈 수 있다. 긴장감과 여유로움을 넘나드는 양면적인 성격은 할리 로드스터만이 가진 큰 특색이 아닌가 싶다.
로드스터만 가진 수치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깊은 맛은 타봐야만 알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스포츠성의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다면, 로드스터에 먼저 올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물론 이 모델 또한 뼛속까지 할리다. 하지만 아주 젊고 변화무쌍한 할리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녀석이 아니다. 누구나 즐겁고 화끈하게 즐길 수 있는 장난감이자 때로는 여유를 나눌 수 있는 바이크다. 두 가지를 통합하기란 쉽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독창적인 할리데이비슨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새로운 할리데이비슨 모델에 대한 기대감도 무척 커진다.
글
글 임성진 사진 장낙규 jin)ride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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